[정병모 미술평론] 문선영, 모란파도
문선영, paradise1, 101×81cm, 한지에 혼합재료, 2023년
[정병모 미술평론] 문선영, 모란파도
정병모 미술사가, 한국민화학교 교장, 전 경주대 교수
문선영의 모란은 꽃중의 왕도 아니고 미인도 아니고, 더더구나 부귀한 사람도 아니다. 그의 모란은 파도다. 뜨거운 열정에 일렁이는 파도다. 모란은 갯바람에 이리저리 물결친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바람에 휘몰아친다. 그의 모란을 읽는 키워드는 상징이 아니라 바다다.
문선영, 꽃빛정원, 117x73cm, 한지에 동양안료, 자개, 2023년
처음 그는 베갯모 속의 모란을 화폭으로 끄집어냈다. 한 뜸 한 뜸 실로 자아낸 모란의 꽃맥을 호랑이 털 치듯 그렸다. 공모전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몇 번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였으니, 자수의 실을 호랑이 털로 변환시키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착상일 것이다.
그의 모란에서 바다를 읽어낸 것은 최근의 일이다. 모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으면, 무의식중에 바다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어릴 적 늘 그가 보았던 푸른 바다가 그의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갯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꽃 패턴을 그리지만, 바람이 멈추면 유리알처럼 매끈하다. 천변만화의 파도가 모란으로 피어난다.
자개는 바다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바다다. 또한 모란이 피어나는 터전이 자개다. 그 속에 물고기가 노닐고 공룡이 등장하고 장수풍뎅이가 기어간다. 정밀한 묘사만으로 그려질 것으로 짐작되는 자개에 뜻밖에 곤충들이 소박하게 표현되었다. 두 아들이 즐겨 갖고 노는 곤충은 모성애의 발현이다. 처음에 아들이 그린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작가가 그 이미지를 차용한다. 썰물이 들어올 때까지 열심히 조개를 캐며 놀다가 흐뭇하게 뒤돌아보는 바다는 유난히 파랬다. 자개의 검은 바다색은 붉은 바다, 녹색 바다. 푸른 바다 등 오방색으로 변해간다.
그의 모란과 자개는 파도와 바다의 이름다운 은유다. 모란과 자개에 바다의 이미지를 중첩하여 표현했다. 단순히 외형적인 개성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우러난 진실의 순간을 포착했다. 모란파도는 이전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바다의 상상력이다. 그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바다를 묘사하기보다는 화면 전체가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그의 모란은 꿈틀꿈틀 움직인다. 바람에 휘날리는 모란에서 격정적인 모란으로 변해갔다. 열정의 화신이 점차 춤을 춘다. 그의 모란은 전통적인 모란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새로운 기폭제가 되고 있다.
출처 : https://www.artkoreatv.com/news/articleView.html?idxno=99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