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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트코리아TV] [정병모 미술평론] 전통의 기억 위에 새긴 시간의 사유, 김남경
글쓴이 dk*** 등록일 2025-10-31 조회 28

[정병모 미술평론] 전통의 기억 위에 새긴 시간의 사유, 김남경


Blossom pink-Vignette, 모시에 은박, 금박, 32x86x6, 2025


책거리는 동서양 문화의 보고다. 대항해시대 유럽에서 중국을 거쳐 전해진 캐비닛(cabinet) 문화의 축적이자 조선시대 물질문화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으로 풀어갈 소재가 무궁무진해서, 최근 현대 작가들 사이에 인기를 끈 모티브다.

김남경 작가의 작업은 전통회화를 단순히 재현하거나 차용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책거리라는 조선시대 회화의 전통적 형식을 해체하고, 그 속에 내재한 구성 원리와 미적 논리를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함으로써 ‘전통의 현대화’라는 새로운 미학적 담론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재료나 현대적인 사물을 활용하여 현대적인 느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전통 재료를 갖고 책거리에 깃든 원리를 파악하여 전통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인의 마음을 파고드는 전략을 펼쳤다.

그의 책거리 현대화 작업 첫 번째 시도는 가장 아카데믹한 이형록의 갈색 톤 책가도를 핑크색으로 전환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견고한 물상은 하얗게 비웠고, 깊은 공간은 오히려 경쾌한 색면으로 채웠다. 갈색의 중후한 색조를 핑크빛의 밝고 경쾌한 감각으로 바꾸고, 중국적인 사물의 색을 백색으로 통일하여 중성화시켰다. 처음 시도는 전통의 형식을 빌리되, 그 질서와 감각을 현대의 조형 언어로 변신하는 방식이었다.

핑크색의 선택은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전통의 무게를 덜어낸 자유로운 감각, 그리고 색과 여백으로 빚어낸 현대적 리듬을 살렸다. 그의 색은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사유의 도구이며, 비워진 형태는 부재가 아니라 존재의 또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 이 과감한 반전은 사물과 배경, 실체와 비실체의 관계를 새롭게 전환하며, 하나의 사유적 구조로 드러내었다.

아울러 민화 책거리에 작가의 아들들이 좋아하는 장난감들을 넣어 새롭게 구성한 작품은 2021년 필자가 기획한 프랑스한국문화원의 책거리 전시회 때 출품된 뒤 영국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에서 구입했고, 이 박물관에서 기획한 “Hallyu 한류” 전시회의 진열품에 포함되어 보스톤미술관, 샌프란시스코아시아미술관, 스위스아시아미술관, 캔버라국립박물관 등 세계 각국에 순회 전시중이다.


Pink Radiance-15°의 사유, 비단에 은박, 금박, 112x112, 2023


두 번째 시도는 우연하게 일어났다.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책만 가득한 책가도를 소재로 삼았다. 수평선과 수직선만으로 구성된 이 병풍 그림을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더 이상 현대적인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무심코 15도 기울여 보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정적인 구성에 동감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왜 기울였지?’ 하고 보는 이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한번 틀어볼까 하고 시도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15도의 사유”라는 독특한 책가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는 “15도의 기울기는 정면성을 해체하고, 인식의 각도를 미묘하게 바꿉니다. 이는 고정된 해석에서 벗어나, 시간과 기억, 생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시각적 은유입니다.”라고 이 그림에 관해 설명한다.

재료와 기법에서도 변화를 주었다. 채색을 배제하고 전통적인 금박과 은박을 사용했다. 은박은 산화시켜 빈티지 느낌을 내었고, 금박은 밝게 나타내어 영속성을 강조했으며, 여기에 스왈로브스키 가루를 뿌려서 반짝이는 효과를 내었다. 은박과 금박은 고려불화의 배채 기법처럼 비단이나 모시 뒷면에 입혀서 은은하게 색이 배어 나오게 표현했다.


Radiant entities-Vignette-00, 25x25cmx16, 모시에 금박 은박, 2025


최근 그가 시도하는 〈비네트 Vignette〉 시리즈는 여러 조선 책가도의 짜임을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여기서 추출한 패널들로 다시 새로운 완성체를 구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해쳐모여식 구성으로 부분과 전체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다.

구성뿐만 아니라 표현방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세계는 민화적이면서 현대적인 단순성이다. 이전의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민화처럼 나이브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실험이었다. 현대문화는 네모난 틀 속에서 모든 것을 담아놓은 아이폰처럼 단순화로 치닫고 있다.

단순화는 자칫 표현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으나,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창적 재료 실험과 조형적 반전을 시도했다. 모시 바탕에 금박을 거칠게 붙여 질감을 드러냈고, 단순하고 평면적인 구성에 민화적인 질박한 선과 투시법으로 재탄생시키며, 중간중간 꽃이 휘날리는 듯한 원형의 이미지로 동감을 부여했다. 여기에 핑크뿐만 아니라 그린, 청색 등 밝고 경쾌한 파스텔 톤으로 표현하여 현대적 감각을 극대화했다

김남경이 추구한 현대성은 강한 전통에 기반한 역발상에 근거한다. 색채를 경쾌하게 바꾸고, 반듯한 것은 기울이며, 채워진 것은 비우고 비워진 것은 채우고, 색채를 박으로 나타내며, 단순함의 가벼움을 유쾌한 이미지로 변신시켰다. 그는 쉼 없는 반전과 반전을 통해 전통 책거리가 조선시대에서 현대까지, 더 나아가 미래까지 줄기차게 펼쳐지는 현재진행형의 그림임을 보여주었다. 전통의 기억 위에 현대적 조형 사유가 겹겹이 쌓이며, 완전히 새로운 책가도가 재탄생했다. 그것은 조선의 형식이 현대의 감각 속에서 다시 숨 쉬는 순간이며, 여백이 시간을 품는 사유의 회화적 반전이다.

그의 화면은 역사의 경쾌한 흔적 위에서 이루어진 사유의 반전이다. 그가 추구한 현대성은 외형적 양식의 변용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비판적 재맥락화를 통해 획득된 사유의 결과이다. 김남경은 과거의 이미지에서 오히려 현대의 감각을 환기시키며, 전통의 시간 위에 현재의 사유를 새겨 넣는 작가이다.

출처 : https://www.artkoreatv.com/news/articleView.html?idxno=99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