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프로필
최윤정(Choi Youn Jung)
수상
· 2026 TSOM K-민화 공모전 대상
· 2025 갤러리한옥 불화·민화 공모전 최우수상
전시
· 2026 갤러리한옥 초대전 (갤러리한옥)
· 2025 TSOM K-민화 공모전 수상기념전 (무우수 갤러리)
· 2024 설레임전 (경인미술관)
· 2001~2023 국제교류 작품전 (무거 갤러리), KSBDA 국제 초대전 (브리지포트 대학교, 미국), DNA 시리즈 기획전 (헤이리 알토 그래프 갤러리) 외 다수
- 작가노트
“전통과 현재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화면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내면과 마주한다.”
나의 작업은 전통과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나는 전통을 하나의 완성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변형되고 해석될 수 있는 살아 있는 감각으로 바라본다. 민화의 상징 안에 오늘의 감정과 이미지를 함께 놓으며,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지고 스며드는 순간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것은 단순히 오래된 형식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 속에 흩어져 있던 감정과 기억의 흔적들을 다시 마주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 끝에서 내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이다.
‘Inner Narrative’(책가도) 작업은 그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내게 책은 지식을 의미하는 사물이기보다, 사람이 살아오며 마음속에 쌓아온 시간과 지혜에 가깝다. 기억과 상실, 침묵과 깨달음 같은 시간들이 한 사람의 내면을 만든다. 나는 책을 펼쳐 보여주기보다 감싸진 형태로 남겨두었다. 드러나지 않은 마음 안에 더 많은 이야기가 머물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선과 구조들은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의 흔적이며, 조용히 축적되는 삶의 시간들이다.
최근 작업 ‘Unit Sequence’에서는 이러한 구조들을 다시 해체하고 연결하며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든다. 불안정하게 이어지는 형태들은 삶의 모순과 균열을 닮아 있지만, 동시에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나는 그 어긋남과 불완전함 안에서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과 스타워즈 이미지를 중첩한 ‘Black Longing’ 작업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화면 안의 다스 베이더와 스톰트루퍼, 요다의 형상은 허구의 캐릭터이면서도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시대와 형식은 달라져도 인간은 여전히 오래된 욕망과 더 나은 삶에 대한 바람을 품은 채 살아간다. 나는 전통과 현대의 이미지를 겹쳐 놓음으로써 변하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작업을 통해 완벽한 세계를 보여주기보다,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화면 앞에 선 사람들 또한 자신의 기억과 감정,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란다.
- 평론글
최윤정의 작업은 전통을 박제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시간축 위에서 끊임없이 증식하고 변형되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 소환하는 데서 출발한다. 작가에게 전통 회화의 도상은 단순히 복원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불안과 결핍, 열망을 투사하기 위한 가장 익숙하면서도 낯선 무대이다.
작가가 선보이는 ‘검은 갈망(Black Longing)’ 연작은 이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세속적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도 위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중첩된 <스타워즈>의 캐릭터들—다스 베이더와 요다—은 이질적인 두 문명의 충돌을 넘어, 현대인이 마주한 고독과 시스템 속의 불안을 은유하는 시대적 초상으로 기능한다. 판화의 레이어 구조는 시간의 층위를 시각화하는 매개체가 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익숙함 속에서 생경한 감각적 균열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유는 ‘Inner Narrative’와 ‘Unit Sequence’ 연작을 거치며 공간과 구조의 확장으로 나아간다. 책거리(책가도)의 전통적 형식을 빌려온 화면은 기억이 켜켜이 축적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책보에 싸인 책들과 기하학적인 블록의 반복은 개인의 내밀한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는 내러티브의 공간이다. 최근 작업인 ‘Unit Sequence’에서 작가는 이 구조를 의도적으로 뒤집고 어긋나게 만듦으로써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해체주의적 공간을 구축한다. 이 불안정하게 교차하는 구조물들은 삶의 모순과 균열을 연상시키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어긋남이 모여 하나의 유기적인 결합을 이뤄낸다.
결국 작가가 화면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종착지는 완벽한 세계의 재현이 아니다. 흔들리고 결핍되었을지언정 서로를 지탱하며 삶을 이어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에 대한 긍정이다. 작가가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시공간의 레이어 앞에서, 관객은 타인의 연대기를 넘어 비로소 자신의 내면과 지나온 삶의 흔적을 조용히 마주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김정환,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