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 도록은 현대화랑의 2018년 전시된, 조선시대 화조화전의 <민화, 현대를 만나다>를 잇는 후속 전시로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2021년 9월 14일~11월 14일) 전시회 도록으로 제작되었다. 이 도록은 조선 후기 문자도 11점과 현대 미술가 3인의 문자도, 응용 작품 13점을 모은 것이다.
문자도(文字圖)는 말 그대로 문자를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이다. 문자이면서 그림이고, 그림이면서 문자다. 조선 시대 문자도는 크게 ‘길상(吉祥) 문자도’와 ‘유교(儒敎) 문자도’로 나뉜다. 길상문자도는 행복의 복(福), 출세의 녹(祿), 장수의 수(壽) 자를 그린 그림으로, ‘복’자와 ‘수’자를 다양한 모양으로 각각 100번씩 쓴 ‘백수백복도’가 대표적이다.
유교문자도는 유교의 주요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를 그린 그림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나라에는 충성하고, 벗을 사귐에 신의를 지키며, 예절을 다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며, 청렴결백하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유교 윤리의 여덟 덕목을 단순히 문자만으로 썼다면 지나치게 교조적인 느낌이 들었을 텐데, 꽃이나 다양한 상징적 의미가 담긴 그림들로 꾸며 자연스럽게 흥미를 갖도록 유도했다.
유교문자도의 각각의 글자에는 관련된 전설과 설화, 상징 동식물의 문양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가장 먼저 시작되는 글자인 ‘효’의 경우, 추운 겨울에 어머니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하자 얼음을 깨뜨려 고기를 잡은 왕상의 설화나 병든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에 죽순을 찾아 치료한 맹종의 설화 속 상징물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이다. 고교시절 전국서예대전에서 최고상을 받았던 작가 박방영이 그려낸 작품은 상형문자로 쓴 그림일기 같기도 하고, 일상에 녹여낸 그래피티(Graffiti) 같기도 하다. 먹과 잉크를 한 화면에서 함께 사용하는 작가 손동현은 서예· 그래피티·출판만화의 표현기법을 가져와 붓으로 쓰거나 칠하고 분무기로 뿜어내 작품을 완성한다. 좌충우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정평이 난 작가 신제현은 새와 꽃이 가득한 ‘화조문자도’를 비틀어 ‘금기와 예의’ ‘천대와 환대’의 경계를 묘하게 넘나든다.
한국민화학교 정병모 교장은 “문자도는 애초에 그 문자가 가진 주술적인 영험에서 비롯된 그림”이라며 “길거리 벽화를 지칭하는 그래피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끄는 것처럼 자유로운 상상력이 담긴 문자도를 현대에 계승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한다.
기획자의 변
근현대 미술을 50년간 다루어 오면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 어떤 것인가를 늘 생각해왔는데, 그 원천은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성행한 우리 민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시기는 웅장하고 찬란한 궁중민화로부터 글이나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민화들이 다양하게 번창했다. 1970년대부터 학자나 전문가들이 민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자도 발간하고, 강연, 전시 등 민화를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뛰어난 민화를 찾아내어 재평가하고 연구하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동참하고자 한다. 이번 <문자도, 현대를 만나다> 전시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되었다.
현대화랑은 2018년 <민화, 현대를 만나다> 화조화편의 전시를 열어 민화계뿐만 아니라 일반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 전시 후에 미국미술관과 일본에서 조선민화전을 기획하고 있다고 도움을 청해왔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민화들은 세계 유수한 미술과 견주어보아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 박명자(현대화랑)
조선시대에 발달한 독특한 유교문자도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것은 조선시대가 낳은 조선적인 예술이다. 조선이 어떠한 유교 국가인지, 문자가 조선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문자도의 유산은 단순히 옛 그림으로만 자부할 것이 아니라 현대에 어떻게 계숭하여 미국의 그라비티 못지 않은 현대의 문자도로 발전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문자도의 의미 있는 가치는 구조적 짜임과 자유로운 상상력에 있다. 이우한이 지적했듯이 표현의 자기완결성보다 구조적 짜임에 더 많은 관심과 창의적 성취를 이뤘다. 문자의 틀 안에 도상을 넣는 형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자유롭게 기호화하고 상징화했고, 문자도에 책거리와 화조화를 아름답게 조합했으며, 현실세계와 이상세계를 간단하게 연계시키는 상상력을 보여줬다. 조선시대 유교문자도에 펼쳐진 보석 같은 예술세계를 넘어서 다시 관심과 사랑을 받는 현대의 문자도가 재탄생하기를 기대한다.
- 정병모(한국민화학교 교장, 경주대 특임교수)
민화는 근대미술의 페이지를 가치 있게 만든다, 그 가운데 문자도는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구사한 것(prototype)에서 대상을 생략하거나 과장한 것에 이르기까지 상상력의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만큼 표현이 풍부하다.
현대화랑이 오랜 기간 눈여겨 수집 대여한 문자도들은 어느 한 지점을 콕 집어 확대해보아도 ‘유쾌한 눈만’을 해치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문자도를 개념적으로 이해하던 방식을 탈피하여, 눈의 직관에 따라 근대미술의 독특한 미감을 보여주는 창의적 스타일을 강조한다. 갑오춘서(甲午春書)라는 1894년의 제작시기가 명백한 백수백복도에서 시작하여 민화문자도의 백미를 보여주는 모던한 감각의 화조문자도, 어린아이의 익살맞은 낙서 같은 제주문자도 등에 이르기까지 형태와 재미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비하고 독특한 ‘개성미’를 제시사고자 한다.
- 안현정(미술평론가)
목차
인사말
문자도의 매력, 구조적 짜임
정병모 ㅣ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문자도, 직관적 꾸밈과 솔직한 눈맛의 만남
안현정 ㅣ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문자도의 어제
문자도
문자도의 오늘
박방영
손동현
신제현
도판해설
안현정 ㅣ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