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김동훈 철학자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그림을 통해 심리 용어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고흐의 그림 가운데 특히 화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을 골라 137점 수록했으며 그림의 소장처도 밝혔다. 저자는 고흐를 통해 메시아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분리불안, 피해망상, 나르시시즘, 모방 욕망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물론 이런 정신적 고통을 고흐만 겪은 건 아니며, 평범한 우리도 어느 정도 이러한 경향들을 조금씩 다 갖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왜 수많은 화가 가운데 고흐를 선택했는가? 고흐는 이 모든 인간의 약점을 통과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적 취미를 만족시켜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고흐는 진정한 예술가를 대표하는 동시에 우리 각자의 한 부분을 대변해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에 여과 없이 드러낸 그의 감정을 보면서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더욱 당당하게 되었다.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과 체계가 마련될 때 우리는 보다 더 건강하고 밝게 될 것이다. 적어도 그때까지 우리는 고흐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대면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김동훈, 『고흐로 읽는 심리 수업』에서
목차
● 차례
1 ‘대체된 아이’가 찾는 사랑
2 따스한 가정이 그리워 찾은 사랑
3 메시아 콤플렉스
4 또 다른 자아 ‘알테르 에고’
5 고흐의 터닝포인트, 외로움과의 투쟁
6 나르시시스트의 사랑법
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8 ‘회귀 본능’과 「감자 먹는 사람들」
9 「담배 피우는 해골」, 자해에 대하여
10 히스테리적 흔적에 관하여
11 ‘모방 욕망’이 만든 슬픈 형제애
12 페르 탕기와 ‘사회적 교환 이론’
13 ‘분리불안’으로부터의 해방
14 고흐의 신발과 페티시즘
15 생존욕구로 퇴행하는 건강염려증
16 고흐의 노란색의 의미
17 ‘안전기지’ 노란 집
18 고갱을 향한 ‘모방 욕망’
19 빈 의자, 고흐의 불안 심리
20 인지부조화와 편집증
21 고흐의 별과 피해망상의 극복
22 치유의 나무와 ‘주의 회복 이론’
23 내 안의 죽음 본능 ‘타나토스’
에필로그: 마음이 쓸쓸할 때 고흐와 함께
저자 소개
김동훈 글
서양고전학자, 철학자, 인문학자로서, 어렵게만 보이는 철학과 고전이야말로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믿음, 깊이 있는 독서만이 창의력을 꽃피운다는 신념을 글로 실천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흙: 상상을 현실화하는 인문적 감각을 키우기 위하여』는 신화, 철학, 문학, 예술이 과학, 의학, 환경 등과 어떤 상상력과 영향력을 끼치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최신 인문학 트렌드를 들려준다.
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협동과정에서 희랍과 로마 문학 및 수사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등에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쳤고,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서양고전 원강을 진행했으며, EBS ‘클래스e’에서 「고전어휘사전」을 강의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인문 분야 화제의 방송이었던 ‘별별명언’을 진행했으며, 『별별명언: 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를 출간했다. 『브랜드 인문학: 잠재된 표현 욕망을 깨우는 감각 수업』은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현상을 질 들뢰즈의 이론으로 해석하여 감각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돕는 인문교양서다. 그 밖에 『몸젠의 로마사』, 장 보댕의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에서 희랍어, 라틴어, 히브리어 텍스트, 그리고 ‘세계시인선’의 『욥의 노래』를 히브리어, 희랍어 및 라틴어 원문에서 번역했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년)
네덜란드 남부 작은 마을에서 개신교 목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고흐는 1869년부터 큰아버지 ‘센트 삼촌’의 헤이그 구필 화랑에서 일했다. 그런데 1873년 구필 화랑의 런던 지점에서 고흐는 당시 산업화의 그늘 아래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충격과 실연당한 아픔으로 정신적 불안을 겪게 된다. 1875년 파리 본점에서는 예술 작품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환멸과 거부감을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해고를 당한다. 이후 전도사가 되어 벨기에 탄광 지대에 파견되지만 거기서도 선교단체와 마찰을 빚고 해고되는데, 이때 고흐는 광부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림에 담으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확인한다. 1881년에 헤이그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을 그렸다. 1886년 테오가 있는 프랑스에 정착하고 툴루즈 로트레크, 에밀 베르나르, 존 러셀 등의 화가들과 친구가 되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888년에 따듯한 프로방스 지방 아를로 내려가 「별이 빛나는 밤」(1889년) 등을 그렸고, 이때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파리 앵데팡당전에 참가했다. 고흐는 고갱을 자신의 ‘노란 집’으로 불러 함께 살았으나 심한 불화를 겪다가 자신의 귓불을 칼로 잘라내고 만다. 이후 생레미의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890년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불꽃 같은 열정으로 걸작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석 달 뒤에 여관 다락방에서 권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고, 7월 29일 새벽에 동생 테오의 품에 안긴 채 삶을 마감했다. 고흐는 2000여 점에 달하는 유화와 데생을 남겼고, 테오도 형이 죽은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고흐 형제 사후에 테오의 아내 요안나가 고흐의 작품 전시회를 열고 편지를 출간하는 등 고흐를 알리려 애썼다. 이후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로 큰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는 상속받은 고흐의 그림들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증하여 1973년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세워지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