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처 입은 영혼들을 달래주는 예술이 아닐까?” ―반 고흐
문학과 예술, 철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인문교양 고전을 엄선해서 번역하는 ‘인문학클래식’이 전 세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 반 고흐의 서간집 『위로하는 예술가: 반 고흐의 편지와 그림』을 소개한다. 반 고흐가 쓴 편지는 844통이 전해지는데 이번에는 아를(1888년 2월~1889년 5월), 생레미앙프로방스(1889년 5월~1890년 5월), 오베르쉬르우아즈(1890년 5월~7월) 시절 중에서 특히 그의 예술과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편지 75통을 골라 발췌 번역했다.
목차
●차례
1부 아를
아주 멋진 풍경
피가 돌기 시작하는 느낌
추위에도 꽃을 피운 아몬드 나무
예술가들이 행복한 시대
화가의 생계를 보장하는 길
여인들의 옷 색깔
화가의 복수
원색을 사용하는 이유
좌절하지 말고!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값
회화적인 얼굴들
날 바보 취급하게 둘 순 없어
또 다른 젊음
고갱을 도우려면
다른 화가들도 돕는 전략
바다 빛깔이 꼭 고등어 같다
노란색과 보라색의 대비
예술가의 신경증
뼛속까지 태우는 열정의 불길로
일본 판화
화가라는 느낌
잘린 고목의 뿌리에서 돋아난 새싹
루브르에 가면
농부를 보는 법
모델이 떠나는 이유
인간을 그리고 싶은 욕망
열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작업실 꾸미기
규칙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불가능한 것들과 씨름할 일
새로운 시인 고갱에게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곳
나만의 복수
그림을 그려내는 고통
비평가들에게 흔들리지 말자
마음의 평화
마음을 굳게 먹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갱의 성공
포기하진 않을 거다
상처를 달래주는 예술
강철 같은 의지로
위안을 만들어내는 광증
그림에 대한 편견
깨진 항아리 같은 존재
슬픈 이야기
2부 생레미드프로방스
어리숙하고 서툴게
정신병원 사람들
늘 먹는 빵이 예술 작품이 되니
더 큰 위안을 주는 그림
진실하고 내면적인 색조
인간의 눈빛에 담긴 다정함
날 기쁘게 하는 그 무엇
의심의 눈초리
그려야 할 아름다운 것들
진실한 것과 본질적인 것
그려진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경
따라 그리기와 번역하기
사물을 단순하게 공략하는 것
이미 시작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가 채워야 할 빈틈
이 상태가 좀 가라앉으면
오해가 불러오는 고통
회한에 짓눌리지 않도록
붓은 저절로 움직인다
3부 오베르쉬르우아즈
슬픔으로 굳은 얼굴
평화로운 풍경
가셰 박사에 대하여
우리의 열정을 표현한 초상화
미래의 예술가
다시 아프게 되더라도
화가들의 사투
그림을 통해서 말하는 수밖에
작가에 대하여: 예술에 취하지 않고 이 힘든 삶을 어찌 견디랴(김한식)
저자 소개
김한식 옮김
- 옮긴이 김한식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 이론과 폴 리쾨르의 해석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유럽문화학부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해석의 에움길: 폴 리쾨르의 해석학과 문학』이 있고, 옮긴 책으로 폴 리쾨르의 『시간과 이야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로즐린 뒤퐁록, 장랄로 주해서), 리쾨르와 카스토리아디스의 대담집 『역사와 사회적 상상에 관한 대화』 등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글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년)
네덜란드 남부 작은 마을에서 개신교 목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고흐는 1869년부터 큰아버지 ‘센트 삼촌’의 헤이그 구필 화랑에서 일했다. 그런데 1873년 구필 화랑의 런던 지점에서 고흐는 당시 산업화의 그늘 아래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충격과 실연당한 아픔으로 정신적 불안을 겪게 된다. 1875년 파리 본점에서는 예술 작품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환멸과 거부감을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해고를 당한다. 이후 전도사가 되어 벨기에 탄광 지대에 파견되지만 거기서도 선교단체와 마찰을 빚고 해고되는데, 이때 고흐는 광부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림에 담으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확인한다. 1881년에 헤이그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을 그렸다. 1886년 테오가 있는 프랑스에 정착하고 툴루즈 로트레크, 에밀 베르나르, 존 러셀 등의 화가들과 친구가 되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888년에 따듯한 프로방스 지방 아를로 내려가 「별이 빛나는 밤」(1889년) 등을 그렸고, 이때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파리 앵데팡당전에 참가했다. 고흐는 고갱을 자신의 ‘노란 집’으로 불러 함께 살았으나 심한 불화를 겪다가 자신의 귓불을 칼로 잘라내고 만다. 이후 생레미의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890년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불꽃 같은 열정으로 걸작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석 달 뒤에 여관 다락방에서 권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고, 7월 29일 새벽에 동생 테오의 품에 안긴 채 삶을 마감했다. 고흐는 2000여 점에 달하는 유화와 데생을 남겼고, 테오도 형이 죽은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고흐 형제 사후에 테오의 아내 요안나가 고흐의 작품 전시회를 열고 편지를 출간하는 등 고흐를 알리려 애썼다. 이후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로 큰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는 상속받은 고흐의 그림들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증하여 1973년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세워지는 데 기여했다.